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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 넷플릭스 영화

영화 <한국이 싫어서> 관객과의 대화(GV) 후기

by loadedgarlic 2024. 12. 15.

*영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있습니다. 영화 감상 후 읽어주세요.

 

 

 

단단한 얼굴로 무거운 트레킹배낭을 맨 고아성이 싫어서

며칠 전넷플릭스를 보니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가 올라와있었다.

 

언젠가 봐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상하게 보기가 꺼려지는 영화였다.

제목만봐도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지 넘겨짚을 있을 것 같았다. 헬조선에 치여살던 젊은 청년이 결국 자유를 찾아 한국을 뜨는 내용. 이런 소재에 마음이 떨리는 젊은이들도 있겠으나 나는 반대에 가깝다. 한국이 싫어졌을까를 영화 속에서 재현해낼 것을 생각하니 괴로웠다. 부당, 가난, 가족 이런 것들이 더럽게 얽혀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포스터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국이 싫어도 한국을 뜨는 쉬운 일이 아닌데 여주인공일 고아성은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걸까. 앞뒤로 수십리터짜리 트레킹 배낭을 야무지게 메고도 아무렇지 않은 같은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산뜻한 단발머리도 가벼운 옷차림도 그냥 뭐든게 가뿐해보여서, 한국을 뜨는 젊음과 낭만 그리고 모험같은 단어들로 설명하려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영화 보게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동네이 있는 인디극장에서 무료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영화보다도 GV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이런 참여하는 사람들은 누굴까? 영화광들일까? 무슨 질문이 하고싶을까. 막상 극장에 도착하자 질문같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방황하는 20청춘들이 가득할 거란 예상과 달리 관객들의 연령대가 무척 높았기 때문이다. 60이상 어르신들도 많았던 것 같다. 감독과의 대화에 아무도 질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때부터 약간 불안했다. 상대적으로 젊어보이는 관객에게 마이크를 넘기면서 강제로 질문 하나씩 시키려나? 압박감. 다행이도 내향인의 기우였다.

 

관객의 질문

영화 기법, 비하인드 스토리, 내용해석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경윤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사실 나는 질문을 들으면서 ‘경윤누구더라 헤매고 있었는데 답변을 들어보니 경윤은 다년간의 시험실패 끝에 결국 자살에 이른 주인공의 대학친구였다. 나처럼 다른 관객들도 사람이 마음에 남았나보다. 질문했던 사람들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나와는 다른 이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제와 오늘 많이 괴로웠다. 무가치한 사람으로 사는게 힘들어서 그만 끝내버릴까 끝없는 충동.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고 아주 오래되었다. 그래서 영화 경윤의 결말이 시원하면서도 너무 안타까웠다. 무척 자연스러웠고 그렇게 느껴지는게 너무 슬펐다. 왜냐면 경윤은 뉴질랜드로 가는 법을 몰라서 죽은 아닐테니 말이다. 제대로된 겨울 신발을 돈이 없어도 뉴질랜드를 돈은 마음만 먹으면 구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마음대로 안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뉴질랜드에 가도 경윤이 찾는 행복같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경윤이 바라던 뉴질랜드는 어디였을까. 공기좋고 전망이 탁트인곳, 해가 잘드는 . 여기에 소음이 없는 곳이란 조건 하나만 추가하면 내가 오래도록 바라는 곳이다.

 

GV에 온 사람들 중 질문하겠다고 손든 사람들은 한 사람마다 두세개씩 질문을 몰아했다. 사람들의 호기심이 전염이라도 되었는지 듣다보니 나도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러나 그쯤 마지막 질문을 끝으로 감독과의 대화시간이 종료되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행복에 관한거였다. 질의시간 감독은 행복이 상품처럼 팔리는 모습에 대해 언급했다. 주인공인 주계나가 ‘사실 행복은 별거 아닌것 같아이런 비슷한 말을 하는데 나는 그걸 들으면서 거기서 말하는 행복에도 돈이 많이 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무척 별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지나쳐온 많은 인연들이 떠올랐다. 호주 여행을 갔을 만났던 워홀러들, 대학졸업 경험삼아 워홀에 가겠다고했던 사람, 서른몇 살이 되기전에 워홀을 갈까 고민하던 사람. 뉴질랜드에 이민을 갔다고 소식을 전해온 사람. 그런 사람들은 지금 어디있을까? 몇이 떠나고, 돌아오고, 남았을까.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촬영 호주에 가서 유학생과 이민자를 인터뷰했다고 말했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행복을 찾았는지, 아니면 행복과는 조금 다른형태의 만족을 찾았는지도 궁금했다. 시간과 용기가 조금 있었다면 이런 것에 관해 질문을 했을 것 같다.

 

배우의 얼굴

배우들이 각자의 이미지와 비슷한 역을 맡은 것이 영화의 재미있는 포인트 중 하나였다. 감독은 고아성 배우의 성인 연기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출연을 제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고아성이 너무 애같아서 고아성은 여전히 고아성스럽다고 느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나니 요즘 내 주위 성인들이 저런 애같은 얼굴을 하고있지 않나 싶기도했다. 어디 회사 안에서 대리님, 과장님으로 불리지 않으면 그저 미숙한, 이십대의 티를 벗지 못한 얼굴로 말이다. 그리고 홍상수 영화 속의 고아성 흡연장면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도대체 장면은 모두의 기억에 그렇게 잘 박힌 걸까? 누군 너무 맛있게 피워서, 누군 너무 어색하게 피워서라고 말한다. 생각엔 아마 어릴때 알던 옆집 어린이가 뜬금없이 자라 흡연을 하고있는 걸 본 충격과 유사한게 아닐까 싶다

 

아쉽거나 좋았던 점

영화 내용 어떤 모습은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밴드 음악하고, 바다로 달려나가고) 너무 전형적인 ‘청춘묘사라 거부감이 들었는데, 얼마안가서는 과격한 ‘실패의 묘사(급사, 자살, 참변)으로 이야기를 엮어놔서 진부한 느낌도 들었다. 이걸 영화로 보고있나. 인스타그램이랑 네이버뉴스에서 맨날 보는 . 그런 생각.

 

GV있어서 좋았던 영화가 영화가 되기까지의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였다. 영화만 봤더라면 그런 장면은 진부하다고 평하고 끝나버렸을텐데, 영화를 찍기까지 뉴질랜드와 이런저런 이유로 이어지는 인연들의 실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화가 보이는 이상으로 많은 이들에게 의미있는 영화겠구나 생각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누군가의 생각을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어서였다. 만약 내가 관객과의 대화 전문을 잡지에 실린 인터뷰로 읽게되었다면 수려한 답변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넘겼을 것 같다. 그렇지만 실제로 들었을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무척 느껴졌다. 더불어 모터레이터로 피디에게도 비슷한 태도를 보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몰라도 자신감이 느껴졌다. 멋진 작품을 만들어서 뽐내는 자부심이 아니라, 정성과 진심을 충분히 담았기에 보여줄 있는 자신감 같은 것 말이다.

 

책은 읽어보지 않아서 책과의 비교(책에 있던 등장인물이 영화엔 없고, 원작과 결말이 다르다는 평가)는 할 수 없지만 영화 자체로도 괜찮았다고 느낀다.

 

감독은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의 어떤 부분보다도 감독이 덤덤하게 공유한 과거에 위로를 받았다. '죽고싶다는 충동때문에 누구에게라도 새벽에 전화를 걸어야 할 것 같았다는 마음, '영화 만드는 거 꼭 해야되는 거 아니라는 걸 안다는 생각. 역시 그랬다. 물론 짧은 순간에도 사람은 그래도 전화할 동료도 성공한 작품도 있는데, 라며 처지를 비교했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삶은 하나도 바뀐게 없다. 이 영화의 상영과 이어지는 GV는 <길을 찾고, 길을 얻다>라는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영화 인물들과 달리 길에 관한 어떠한 힌트도 찾지 못했다. 그래도 감정적인 위로가 되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언젠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사실을 확인한 것 만으로도 간접적인 공감을 받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윤이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보면서 짠하기도하고 몇년간의 모습이 보여서 웃기기도했다. 올해 행복했던 순간 대부분은 독서실 근처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먹는 거였다. 뜨겁고 기름진 음식이 입에 들어오면 기뻤다. 영화를 보고 동네를 걷다가 롯데리아에 갔다. 늦은 점심이자 이른 저녁으로 알뜰하게 쿠폰을 먹여가며 세트메뉴를 주문했다. 햄버거를 먹으며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메모장에 적었다. 분명 유익한 하루였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잠들려고하자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단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